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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조선일보 2014. 09. 27.(토) 신문기사
작성자 임형문꿀 (ip:)
  • 작성일 2015-08-10 21: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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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名匠은 말한다] 진정한 명장은 벌과 自然… 난 원칙만 지킬 뿐


-60년 벌치기 명장 임형문씨
꿀 생산의 기준은 '인간' 아닌 '벌'… 남들 한 해 5번 받을 때 1번 수확
꿀은 돈벌이 아닌 약으로 여겨야… 아들도 기다림의 철학 이어가길

임형문(84)의 벌 치는 기술이 남달리 좋은 것은 아니다. 획기적 방법으로 꿀 생산을 늘린 것도 아니고, 비법을 써서 꿀맛을 살린 것도 아니다. 나라가 공인한 명장도 아니다. 그저 좋은 터를 골라 벌통 놓고 벌집에 꿀이 가득 고이기를 기다릴 뿐이다. 하지만 그는 양봉업계에서 '명장(名匠)'이라 불린다.

그는 벌집에 꿀이 거의 차도 꺼내지 않는다. 완벽해질 때까지 기다리고 기다린다. 다른 양봉업자들이 한 해에 꿀을 5번 받는 동안, 그는 달랑 1번 내린다. "벌은 사나흘이면 벌집의 8할을 꿀로 채웁니다. 그런데 나머지를 채우려면 2~3주가 걸려요. 양봉업자들은 심하면 사흘에 한 번꼴로 꿀을 빼죠. 하지만 꿀의 질은 나머지 2할이 좌우해요. 그 2할을 채우려고 벌들은 꽃 대신 나무, 들풀, 바위에 달라붙어요. 얼핏 보기엔 그저 노는 듯하지만, 실은 천지만물의 영양소를 그러모으는 거죠. 이게 빠진 꿀은, 맛과 향은 그럴듯할지 몰라도 내용은 설탕 시럽보다 나을 게 없어요."

아버지 임형문

아버지 임형문(오른쪽)이 꿀을 꺼낼 때, 아들 임익재(왼쪽)는 옆에서 풀을 태워 연기를 낸 다음 다가온다. 그래야 벌에 쏘이지 않는다. 아버지는“벌들은 순해서 사람을 쏘는 일이 거의 없지만 내 나이가 있다 보니 한 번 쏘이면 위험할 수도 있어 아들이 노심초사한다”고 했다. /김영근 기자



꿀이 완전히 차면 벌은 입구를 밀랍으로 봉한다. 임씨는 그 뒤로도 몇 달을 더 기다린다. 숙성을 위해서다. "벌은 봄에 꿀을 비축했다가 겨울에 먹습니다. 여름·가을을 거치는 동안, 20~30%이던 수분이 16~17%로 줄면서 숙성되죠. 소주에 복분자를 넣는다고 바로 복분자주가 되는 게 아니듯, 온갖 성분이 어우러진 진짜 꿀이 되려면 꼭 거쳐야 할 과정입니다." 그가, 아니 벌이 완성한 꿀은 겉보기엔 보통 꿀과 차이가 없다.

애초에 돈 벌자고 시작한 양봉은 아니었다. 그렇기에 기다릴 수 있었다고 했다. "젊을 때 심한 감기에 시달렸어요. 할아버지가 꿀이 특효라며 권하시더군요. 정말 효과 있었어요. 이후로도 감기에 종종 걸렸는데, 제대로 된 꿀을 구하기 어려웠어요. 그래서 직접 만들기로 했죠." 양봉책 한 권과 벌통 하나를 구해서 시작했다. 26세 때다. "책도 닳도록 읽었지만, 노하우는 거의 실전에서 얻었어요. 약효를 높이려고 이것저것 시도하다 보니, 제 나름 최고의 꿀을 내는 방법을 터득한 거겠죠."

임형문은 전남 화순의 한약종상(韓藥種商)이다. 양봉은 부업이다. 벌통 10개로 한 해 많으면 200㎏ 받아냈다. 대부분 부부와 네 아들·딸이 먹고, 나머진 친구들에게 선물했다. 이 선물이 상품화의 단초(端初)가 됐다. "친구들이 제 꿀을 남에게도 권했나 봐요. 그렇게 드신 분들이 찾아와 팔라고 졸랐어요." 임형문 꿀은, 구하기 힘든 탓에 고급스러운 선물로 인기 높아졌다. "바로 거절은 못하고, 보통 꿀보다 대여섯 배 비싸게 부르며 뻗댔죠. 귀찮아서요. 벌통 열 개 키우기도 힘든데, 장사하려면 훨씬 많이 놓아야 하니까요. 그런데 그 돈 내고도 사겠다는 사람이 줄 잇는 거예요. 말을 무를 수도 없고…." 그래도 벌통은 70개로 제한했다. 가족 힘으로 감당 되는 선에서 그치고 싶었기 때문이다. 밀랍이나 로열젤리 같은 부산물을 다루지 않은 이유도 마찬가지다. "그런 거 챙기려면 추가로 사람 써야 해요. 안 하는 게 낫죠." 아무리 재촉받아도 봉밀(封蜜) 후 숙성을 마치지 않은 꿀은 내놓지 않았다.

양봉 44년째인 지난 2000년, 아들 임익재(51)가 꿀 장사를 맡겠다고 나섰다. "아들놈이 복분자주 사업을 하는데, 접대네 뭐네 술을 진탕 마시고 이 꿀을 먹어보니 효과가 좋았나 봐요. 이게 감기에만 듣는 게 아니라 골고루 보약이구나 싶어 널리 팔아보겠다는 거죠." 아버지는 조건을 걸었다. 벌통을 늘리더라도 생산은 원칙을 지킬 것. 돈벌이 아닌, '약'이란 마음으로 팔 것이다. "언젠가 50병을 사겠다는 사람이 있었어요. 거절했죠. 산삼 50뿌리를 한 사람이 다 먹는 게 좋을까요? 아니면 50명이 나눠 먹는 게 좋을까요?"


이제 벌통은 1500개로 늘었다. 노하우도 거의 전수했다. 그럼에도 팔순의 임형문은 매일 벌통을 돌본다. "이 나이에 벌 치는 게 대단해 보일지 몰라도, 제 방식은 그리 힘들지 않아요. 그저 벌이 좋은 영양을 얻어갈 터를 골라 주고, 자연스럽게 벌이 자라고 꿀이 모이게 돕는 것뿐이거든요. 명장은 내가 아닙니다. 벌이 명장이고, 자연이 진정 위대한 명장인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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